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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훈 감독과 식사를 마친 나는 차 안에 앉아서 곧장 은미성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구 대표님.
좋아. 내 전화번호를 저장해뒀군.
지난번 은 작가를 만났을 때에 입봉을 시켜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었는데.
다행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네, 안녕하세요, 은 작가님.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 좋은 소식이요?
“제가 PD를 구한 것 같아요.” – 네에?
“네에라뇨. 제가 입봉 시켜드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본은 손 보고 계시죠?” – 그, 그··· 하고는 있는데···.
착실히 대본 작업도 하고 있단 말이지.
아무래도 내 큰 소리가 먹혀 들어간 것 같다.
“이제 6일 뒤입니다. 그때 PD님한테 극본 보여주고, 주연 여배우도 캐스팅 할 겁니다.” – 네? 그 자리에서요?
“그 자리에서요.” 왜냐하면 캐스팅 후보가 한 명 밖에 없을 테니까.
주하율 이외의 선택은 허락하지 않는다.

아, 아하, 아하하······. 로투스바카라
은 작가 입에서 어이없어 하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허풍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이건 진짜입니다. 제 쪽에서도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지만 제가 드리는 말은 모두 진심이고 진짜예요.” – ······.
“자세히 설명을 드릴까요?” – ···저도 주변에 구 대표님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응? 나에 대해서?

어쨌든 다들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허언을 할 분은 아니라고.
이제 허언도 막 하면서 살려는 입장에서는 좀 찔리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내가 지나온 삶이 나쁘지는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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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가끔 망한다고······.
음. 나쁜 부분도 있었지. 응, 있었어.
“작가님, 그건 연예인과 관련될 때 생기는 일들이었어요.” – 네, 그렇더라고요.
거기까지 알아봤나? 어제 만났을 뿐인데 하루 사이에 자세히도 알아봤네.
그 말은 은 작가에게도 이 기회가 절박하게 느껴졌다는 것.
방 PD도, 은 작가도, 내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이렇게 따라오는 건,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는 게 너무 너무 싫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일단 대표님 제안대로 대본 만들어서 가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저도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도 거기서 PD님이나 배우 분을 뵙고 판단을 내리죠.
그리고 기회를 놓치는 게 너무 너무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픈홀덤
“아주 좋습니다. 반드시 만족하도록 해드리죠.” ***
은 작가와의 통화를 마치고서도 나는 차를 출발시킬 수 없었다. 미팅에 대해서 통보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하율 씨, 로코 연기 준비는 잘 하고 있나요?” 작가와 감독은 준비됐다. 은 작가는 분명 괜찮은 극본을 보내줄 테고, 방훈 감독은 별 다른 방해 요인만 없으면 연출을 잘 할 텐데.
관건은 주하율이다. 내가 주는 작품을 무조건 하겠다고는 했지만.

대표님 말씀 듣고 로코물 많이 보고 있는데요.
“그런데요?” – 으으, 너무 닭살 돋아요.
원래 로코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던 그녀. 회귀 전에도 몇 년 뒤에야 로코 연기를 시작한다.
만약 감독과 작가가 난색을 표한다면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 있다.
“그런가요? 미팅 날짜는 잡혀 버렸는데.” – 네? 벌써요?
“미룰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어서요.” – 언젠데요?
“6일 뒤요.” – 그렇게 촉박하게요?
“더구나 하율 씨가 대본 볼 시간은 3일 정도 밖에 안돼요.” 은 작가에게 이메일을 문자로 보내면서, 여배우가 준비할 수 있도록 한 화 분량은 미리 보내달라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3일 뒤에 보내겠다는 것이었고.
바로 그 3일 동안 주하율이 준비를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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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괜찮아요? 우리 미룰 수는 없습니다.” 슬쩍 걱정이 된다. 처음 해보는 연기를 3일 만에? 아무리 베테랑 배우라도 쉽지 않을 일인데. 물론 주하율이 승부욕의 화신이라지만···.

안 괜찮아도 괜찮게 만들어야죠!
아하?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잘 준비해서 갈게요!
승부욕의 화신이니까 안심!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당찬 에너지로 가득했다.
“큭큭, 좋아요. 그 기세로 나갑시다. 대본 오는 대로 보낼 테니 그날 봐요.” – 네, 제대로 보여드릴 게요.


나는 그 후에야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이프게임
“대표님,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눈치 빠른 비서 이나라가 내 지친 모습을 보고 먼저 커피를 권해왔다.
“고마워요. 그럼 한 잔만 부탁해요.” 삐걱-. 커피를 받고 대표실 의자에 몸을 실으니 살짝 한숨이 흘러나왔다.
불과 3일차. 그런데 회귀 전과는 달리 하루하루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다행히 이제 6일 후까지는 큰일은 없을 테고.
나는 슬쩍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종이 한 장과 그 위에 놓아둔 명함 하나.
종이는 회귀 전 나를 차로 덮친 자의 문신을 그려둔 것. 비록 제대로 못 봐서 채 완성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명함은 예전에 받아서 어딘가 박아둔 흥신소 명함이다. 이쪽 일을 하다보면 필요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는 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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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르르.
신호가 한 번 가자마자, – 예, 심부름센터입니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흥신소보다는 심부름센터라는 명칭을 댄다. 문제는 그 심부름이 어떤 심부름인가 하는 것이겠지.
“혹시 문신을 단서로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 – 문신이요. 다른 정보는 없으시고요.
차량? 그러나 번호도 못 봤을 뿐더러 7년 전인 지금 그 차량으로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네, 문신뿐입니다.” – 일반 사람 찾아드리는 건 삼백이면 합니다. 정보가 적을수록 비용이 올라가고요. 특이하거나 알아보기 쉬운 문신입니까?
“···아니요. 도형 문신인데 확실하지가 않네요.” – 그러면 비용이 수천 들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찾아드린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렵고요.
수천만 원이라. 지금 회사 운영하기도 빠듯한데 수천을 빼낼 수는 없다.
별 수 없다. 벌자. 얼른 벌어서 맡겨야지.
“쯧, 돈 좀 더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 알겠습니다. 언제든 연락주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종이와 명함을 서랍 안에 던져 넣었다.
잠시 빈 날들을 이용해서 살인자를 찾아보려는 계획은 보류. 한동안은 일 해나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걸로.
자, 6일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으흠흠.” 방훈 감독의 헛기침.
“킁킁.”
은 작가의 코 훌쩍임.
나, 방훈 PD, 은미성 작가는 서로 인사를 마치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 위에는 출력되어 나온 대본이 놓여 있었는데. 아직 두 사람의 눈에는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세이프파워볼
방 감독에게 은 작가는 단막극 한 편 정도를 한 무명작가였고, 은 작가에게 방 감독은 대박작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복이 있는 감독.
이들에게는 아직 서로가 믿음직하지 못했다.
오직 나의 자신감이 두 사람을 이 자리로 데려왔다.
그럼 나는 어떤가 하면.
자리에서 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다.
‘이얏호오!’ <재벌가 망나니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은미성 작가가 보내온 작품의 제목이었다.
회귀 직전과는 달리 7년 전으로 돌아온 지금은 이런 식의 드라마 제목은 흔치 않았다.
기억하기 쉽고 입에 딱 달라붙는 명료한 제목을 선호하던 때.
그러나 긴 문장의 제목을 유행시킨 것이 바로 은미성 작가다. 그녀 이후로 다양한 스타일의 제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벌가 망나니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라는 이 제목은, 회귀 전의 은 작가가 대박을 친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버려져 있는 망나니와 그를 주운 오지라퍼 취업 준비생의 기억상실 로맨스.
이 작품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다니.
은 작가가 불안해하면서도 자기의 최고 작품을 가지고 왔군.


그럼 한 번 높게 올려드려야지.
“은미성 작가님은 드라마 스페셜만 한 편 하셨어요. ‘너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 단막극 한 편 외에는 아직 경력이 없으시죠.” 이미 서로 인사도 끝난 판에 나는 다시 소개 아닌 소개말을 던졌다.
불쑥.

은 작가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
안 그래도 경력에 자신이 없는 그녀. 내가 왜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그러니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감독님께 제일 처음 보여드리는 겁니다.” 불쑥.
또 다른 쪽 눈썹까지 올라가며 눈이 커진다. 어쩌자고 자신을 이렇게까지 띄우는지 모를 테니 부담스럽기만 할 테지.
괜찮습니다. 작가님은 이 정도 띄워도 돼요.
방훈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니, 지난번부터 너무 한 거 아니야? 나한테 기회를 준다니 뭐라니 하면서 잔뜩 기대하게 만들고. 은 작가님이 그렇게 실력이 좋으신가봐. 나도 알아보는 눈이 있으니 제대로 봐야겠어.” 체한 얼굴이 된 은 작가를 두고 방 감독이 일단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저 너스레가 아니라 본인도 대본을 꼼꼼히 확인하겠다는 선언.
물론 그러셔야지. 그래야 대본이 얼마나 좋은지 알죠.
“방 감독님, 6일 전에 약속한 건 기억하시죠?” “어, 뭐.” 나는 그의 앞으로 프린트한 시놉과 대본을 내밀었다.
“읽고 대답해주세요.” 파워볼사이트 방훈 감독은 긴장된 표정으로 <재벌가 망나니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의 대본을 집어 들었다. 그는 숨죽이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은 작가는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침을 꼴딱 삼키고 등을 더욱 꼿꼿하게 세운 채 앉아 있었다.
똑딱 똑딱.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만 울리는 회의실.
여기서 처음으로 난 소리는.


“오.”
감탄사다. 다른 뜻 없는 순수한 감탄사.
그리고 곧 연이어 다양한 변용이 이어졌다.
“엌···

.” “어?”
“으흠.”
등등.
이건 곧 대본 속으로 빠져든 소리.
그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점점 대본 안으로 깊게 들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시놉과 2화 분량의 대본을 다 읽은 방훈 감독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흐음······. 세이프파워볼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상기시켜 줘야지.
“방 감독님. 작품 어때요?” 정신을 차린 방 감독은 내 얼굴을 보고, 은 작가 얼굴을 한 번 바라봤다.
“휴우, 자네 말이 맞구만. 숨겨진 보물을 가져다 줬군.” 내 입꼬리도 올라갔지만.
은 작가의 얼굴이 눈에 띄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방훈 감독은 은 작가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역시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감독님. 감탄하실 거라고 했죠?” “구 대표는 어떻게 이리 작품 보는 눈이 정확하지? 은 작가님, 정말 대본이 훌륭합니다.” 방 감독 본인도 완전히 안심한 표정이 되어 은 작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감독을 하면······” 그리고는 갑자기 장면 장면에 대한 연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은 작가님한테 실력이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할 것 아냐.” 하면서 눈을 찡긋한다. 방 PD 본인도 자신의 최근 전적을 신경 쓰고 있었군.
은 작가는 얼떨떨하니 방훈의 아이디어를 듣고 있다가 그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눈 뒤.
“어떻습니까. 은미성 작가님.” 방 감독이 스윽 손을 내밀었다.
“같이 하시죠.” “오히려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은 작가의 손이 지체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나와 방 감독을 번갈아 바라봤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 중 입봉을 꿈꾸는 이가 얼마나 많던가.
그들 중 기회를 얻는 건 단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쉽게 승낙을 얻는 경우도 드물고.
그녀 역시 KBC에서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해왔던가.
한 마디로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흐음.
이 감동을 즐기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만.
“자, 그럼 이제 주연 여배우를 보실까요?” 이 미팅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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