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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티를 입은 남자는 호텔 직원이 아니라 GO 엔터의 직원이었다.
그를 따라 홀 밖으로 나오니 한순간에 조용해진다.
은은한 조명과 푹신한 카펫. 앞장서서 걷는 직원의 발소리도 잘 안 들렸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니 그가 층수를 눌렀는데.
나는 손을 확 뻗었다.
“아, 앗?” 내 행동에 그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6월에 폴라 티는 좀 덥지 않아요?” 내가 옷의 목 부분을 확 당겨 내린 것.
역시나. 엔트리파워볼
목에는 기하학적 문양의 문신이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조금 어려 보이지 않았다면 너도 의심의 대상이 되었을 텐데.
“뭐, 뭡니까! 갑자기 옷을!”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지만.
“문신 구경은 잘했습니다. 이제 조용히 올라갑시다.” 나는 그를 무시해 버렸다.
목 폴라가 나를 째려봤지만.
어쩔 건가. 어차피 말단일 텐데. 윗대가리가 데려오라고 한 사람을 깔 거야, 뭐야.
녀석은 화를 참으며 앞을 바라보았고.
어쨌든 내 예상은 맞았다.
문신을 보니 이 말단 녀석도 망량파의 전 조직원이었던 모양이다. 조직이 망하자 일부가 넘어왔다더니 김근호를 따라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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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목 폴라는 씩씩거리며 앞장서 걸었다.
우리는 한 객실 앞에서 멈췄는데.

똑똑. “모셔 왔습니다.” 목 폴라의 노크에, “안으로 모셔라.” 문 너머에서 잔뜩 쉬어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대놓고 악당 목소리네.
안으로 들어가니.
일단 정면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과 한강이 나를 반겼다.
특급 호텔이라 그런지 야경도 특급.
고개를 내리니 스위트 로투스바카라 룸에 비치된 붉은 기가 도는 목제 가구들도 보이고.
마지막으로.
창 가까이로 버건디 색상의 소파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가 와인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느긋하게 일어섰다.
“수고했어.” 그의 눈짓에 목 폴라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둘만 남은 공간, 남자는 터벅터벅 내 앞으로 걸음을 옮겨 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날카로운 눈매.
광대 아래부터 하관까지는 하이에나처럼 길고, 입은 또 옆으로 큼직하다.
무슨 하이에나의 인간형 같은 건가.
거기에 목 문신까지 있으니 인상 한번 살벌하다.
조폭 간부를 해 먹을 만했군.
신기하네.
기억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알 것 같기도 해.
남자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죽기 직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거든.
달리는 SUV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나를 밀어 버렸다.
그 직전, 목표를 노리는 맹수처럼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던 눈매가 기억나는데.
지금, 그 눈매를 마주하고 있었다.
저 짐승 같은 눈빛 아래로 상상 속 마스크를 씌워 보았다. 얼굴의 반을 가려 보자니.
맞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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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얼굴을 한 번에 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순간, 몸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나를 죽인 자.
무서운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억울함, 그리고 분노.
그래, 나를 죽인 자.
죽여 버리고 싶어서 몸이 떨린다.
너냐? 날 죽인 새끼가.
묻고 싶었지만.
후우.
진정, 진정. 로투스홀짝
티 내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손을 꽈악 쥐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자도 미래에 자기가 나를 죽이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번에는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 줄 테니 아예 물어볼 수가 없겠지.
그가 잠시 걸어오는 찰나의 순간에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는데.
하이에나 같은 놈의 입이 열리며, “GO 엔터 부사장 김근호입니다.” 김근호가 나에게 턱 손을 내밀었다.
정중하긴 했지만 섬찟한 느낌. 짐승이 예의를 두르고 있는 모습인데.
김근호와 손을 맞잡자.
깡패 새끼답게 건장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악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
나 역시 그가 놀랄 정도로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과거의 내가 아니란 말이야.
GO 엔터의 부사장?
그 직함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나.
조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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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망해서 연예계로 흘러들어 왔다면서. 역시 겁나지 않는다.
“나인의 구은우입니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 내며 악수를 마쳤다.
“하하하하, 구 대표님은 젊은 분이라 패기가 넘치는군요. 잠깐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김근호는 내게 자리를 권했고.
피하지 않는다.
나는 편안하게 소파에 앉았다.
몸의 떨림도 가라앉았고.
이제는 다른 흥분이 느껴지는데.
하이에나가 무슨 말을 할까 하는 흥분.
김근호는 내 앞 와인 잔에 레드 와인을 따랐다.
“제가 전에는 다른 업계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따위의 말을 꺼내면서 말이다.
“그래서요?” “그래서 엔터 일을 한 지는 얼마 안 되는데 말이죠. 근데 와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여기도 다른 데랑 똑같구나. 이런 느낌이 팍, 들더란 말입니다.” 뭐 이렇게 말을 돌리나 싶은데.
좋아, 어떤 결론으로 가는지 잠깐은 따라가 볼까.
“다른 데랑 똑같다?” “네, 똑같이….” 그가 나를 향해 자기 잔을 살짝 들어 보였는데.
나는 잔을 들지 않았다.
혼자 드시든가. “클, 클, 클, 클….” 김근호는 뱉듯이 웃고는 와인을 한 모금 넘겼다.
“에휴. 이미 힘이 있는 놈은 계속 자기한테 유리하게 판을 짜고, 힘없는 놈은 그 판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치이고. 뭐, 이런 거 말입니다.” 그 말인가.
연예계 역시 그런 흐름에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영역이 많아서 오히려 더 그렇다. 인맥이 통하고, 뒷돈이 통하고.
앞으로야 점점 투명해지겠지만 아직은 한참 가야 할 길이 멀다.
“그게 똑같다고요.” 오픈홀덤 “네, 아주 똑같아요. 요즘 어느 업계를 가도 안 그런 데가 없잖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그런데 이미 판을 짜는 쪽은 대략 결정이 되어 있는 게 또 세상이고요.” 연예계 역시 점점 판세가 고정되어 간다. 기획사만이 아니라 전 영역이 마찬가지.
“결정이 되어 있다.” “예, 그렇지요.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사이즈가 큰 쪽이 있으니까요. 그런 쪽이 뭉개고 들면 작은 쪽들은 자리를 비켜야지 별 수가 있나요. 안 비키면 뭉개질 텐데.” 그가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서 돈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가 말하는 사이즈는 자본의 크기였다.
“그게 아니면.”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 알 것 같은데.
“큰 놈 쪽에 붙기라도 하려고 애를 쓸 수밖에요.” “흐음.” 역시 생각한 흐름으로 가는군.
내 뒤에 더 큰 자본이 있다.


붙어라.
뭉개지기 싫으면.
“회사를 넘기라는 말이군요.” 이 말 하고 싶은 거 아니냐.
“넘기다니요. 우호적인 합병입니다.” 하이에나는 역시나 예의를 차렸는데.
“아니, 아니. 정말입니다. 못 믿는 눈치이신데. 우리는 구 대표님을 GO 엔터의 이사로 선임하고 싶습니다. 채동학처럼 그냥 명목상으로 앉혀 놓는 게 아니라, 실권이 있는 이사 말입니다. GO 엔터의 방향타를 구 대표님 손에 쥐여줄 수 있다 이겁니다.” 음?
나한테?
“사실 자잘한 기획사는 몸집 키우기 용일 뿐 중요치 않죠. 이거 아니면 저거 인수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나인은 달라요. 구 대표님이 와 주면 우리 GO 엔터에 큰 힘이 될 겁니다.” 나를 높게 쳐주는군.
그건 고맙다만.
“거기서 우리가 누굽니까.” 난 잠깐 생각 후에 말을 돌렸다.
조건이 좋다고 덥석 물 거라고는 생각 안 했겠지. 내가 궁금한 것도 몇 개만 말해 봐.
내 질문에 김근호라도 움찔하는 기색인데.
“우리, 라고 하는데. 실은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이겠죠? 부사장도 그 사람에게….” “그 사람, 보다는 회장님이라고 해 주시죠.” “하, 회장님. 그래요, 그 회장님 뜻이라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이 누굽니까. 누군데 나한테 얼굴도 안 보이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김근호는 어울리지 않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오해가 있는데, 회장님의 뜻이기도 하지만 제가 적극 추천했습니다.” 나를 죽인 당신이? “장재열 사장이 일하는 걸 봤거든요. 그 친구가 구 대표를 전혀 이기지를 못하던데요. 장 사장이 멍청한 면이 좀 있기는 한데, 그렇다 쳐도 구 대표가 일을 너무 잘하더군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그 말은 장재열이 벌이는 비열한 짓을 모두 용인했다는 건데.
김근호만이 아니라 회장이라는 작자도.
“그리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거물이 나대는 것 봤습니까? 거물이 너무 쉽게 나타나면 주변에서 오히려 겁을 먹습니다.” 나는 잠깐 그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얼굴이야 차차 보면 되는 거고. 구 대표는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 좋은 제안을 얼른 받아서, 판을 짜는 쪽에 서는 거죠. 구 대표님이 조금만 열심히 하면 금방 사장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는 나를 보며.
클, 클, 클, 클.
다시 뱉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
짜증이 밀려온다.
회귀 전이었으면 내 살인범이니 경찰에 데려갈 테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저 낯짝을 보고 있기 열 받는데.
그런데 내가 일을 같이 해?
이자가 말하는 회장은, 무슨 원한을 가졌는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써서 죽인 인물이고. 세이프게임
그 칼이 되었던 게 김근호다.
또한 장재열의 비열한 스타일을 그대로 용인했다. 만약 장재열이 나를 이겼다면 그대로 계속 그 스타일로 일을 시켰겠지.
그럼 결론은.
“탈락입니다.” “??”
나의 뜬금없는 말에 김근호가 눈을 치떴다.
“탈락?” “탈락이요. 제가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엄격한 기준이 있어서요. 회장도, 당신도, 탈락입니다.”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 구은우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민도 없이. 그리고 탈락? 당신이 우리를 평가한단 말이요?” 그의 쉰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렸다.
하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탈락이니까. 기준에 안 맞아요. 앞으로도 안 맞을 것 같고.” “도대체 무슨 기준을 말하는 거요?” 그는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았다.
말해 주는 거 어렵지 않지.
“저는 가능한 착한 사람하고 일하거든요.” “뭣이?” 지금까지 침착하던 그의 입에서 정말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착, 착한 사람?” “네, 착한 사람하고 안 착하게 산다, 이게 제 경영 방침입니다.” “경영 방침?” “이미 안 착하게, 아니, 내가 봐서는 제법 나쁘게 살고 있는 당신들은 그 기준에 어긋나.” 그가 다시 한마디를 꺼내려고 했으나.
“당신은 딱 봐도 조폭이고. 조폭에 장재열에, 그런 사람들만 부리는 회장도 알 만하고. 탈락! 탈락!” 내가 말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봐. 구 대표님.” 싸늘하게 착 가라앉은 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회장님은 원래 잘 포기하지 않는 분이신데. 특히,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면 더 달려드는 분이시지. 앞으로 많이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예의가 벗겨지면서 슬슬 반말이 섞인다.
하이에나가 그러면 그렇지. 어디서 사람인 척을 하고 있어.
“회장님이라는 분한테 내 앞에서 꺼지라고 전해 주세요.” “!!”
예전이라면 내가 얼마나 겁을 먹었을까. 내 회사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시절이었다면.
하지만 말이야.세이프파워볼
지금은 다르다고.
나도 다르고, 내 편도 다르고. 이미 내 주변에 많은 사람을 모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질 것 같지가 않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는 것 같네요. 나랑 붙어서 남아난 사람이 없는데. 회장님도 자신 있으면 덤벼 보라고 해요.” 재밌겠네.
내가 회장도 하나 잡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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