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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험악한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바텐더는 내 앞에 보드카가 담진 술잔을 놓는다. 사냥꾼들이 시선이 바텐더의 움직임과 석상처럼 굳은 윙을 오간다. 내가 오른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자 윙을 겨누던 몇몇 병기들이 나를 향한다.
“자네, 우리가 장난하는 거 같은가? 팔콘과 한통속으로 엮이는 수가 있어.” 고희순이 진지한 얼굴로 노려보기에 무표정으로 대응하고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옆에서 허, 하는 그의 탄식이 들린다. 식도에 느껴지는 화끈함을 음미하며 잔을 놓았고, 바텐더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규칙이 바뀌었습니까.” “조용히 해!”
뒤에서 내 폐를 노리고 찔러오는 레이피어. 가만히 놔두면 팰리스가 알아서 막겠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커억!
바 테이블에 보드카가 담긴 새로운 잔이 놓임과 동시에 공격하던 사내가 바닥에 처박힌다. 위에서 망치로 때려 찍은 듯한 모양새. 바닥에 남은 자국은 정확하게 지금 내 앞에 내려둔 잔의 하단부와 일치한다.
“변함없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무뢰배들을 쫓아내도 괜찮겠습니까.” 비운 잔을 물로 씻고 내부를 닦던 바텐더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게이트.”
레딕스 틀을 그들의 발치에 산발 배치하여 게이트 오픈. 주점 밖 사거리로 전송.
“어엇.”
“으악!” 파워볼사이트


“뭐, 뭐야!”
그리고 입구를 포함한 건물 외부에 유사 차단막을 씌워 진입을 막고 내부를 볼 수 없게 하였다. 일련의 과정은 새롭게 나온 보드카를 홀짝이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와,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시전 속도가 거의 즉발이네. 좌표 계산은 보조뇌가 하나? 아니, 그렇다 쳐도 이건….” 작은 매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윙이 옆의 의자에 앉으며 감탄한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고갯짓으로 진열장을 가리켰다.

“주문해.”
“그래야지. 나는, 보자. 진 토닉 되나요?” 답지 않게 존댓말이라. 윙도 바텐더가 베일 메로우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모양. 바텐더는 주문에 가부를 답하지 않고 제조에 들어간다. 하이볼 글라스를 두고 얼음을 채운 후 진, 라임, 토닉워터를 순서대로 투하.
“오.”
맛이 괜찮은지 챱챱 거리다가 입에 잔뜩 머금고 가글하듯 음미하는 윙.
“날 찾은 이유는?” 나는 남은 보드카를 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데카 스크롤.` 뽀득 뽀득 세척 소리가 멎는다.
“읍, 콜록.”
옆에서 진 토닉을 즐기던 윙이 놀라 기침한다. 주점 바닥에 쏟아진 액체. 나와 바텐더는 그 광경을 잠시 동일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야기를 이었다.
“제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너라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저를 아시는군요?” “자네를 모르면 페이퍼 롤에서 장사할 생각은 말아야지. 아델과 하마르는 잘 지내나?” 과연.
“심계중앙회의 장로다운 정보력이군요.” 늘 여유가 느껴졌던 바텐더의 안면이 일순 굳었다 풀린다. 무려 마탑주가 가져다준 정보. 엔간해선 아는 이가 없을 터. 세이프파워볼
“그 불나방이 꿀을 물어갔나 보군.” 불나방. 에레나를 지칭하는 단어려나.
“글쎄요.”
여기서 내가 아는 척을 할 수는 없다. 연관 있다는 걸 들키면 모두에게 좋지 않으니. 바텐더는 앞치마를 풀고 바 테이블 안에서 나오더니 주점의 구석으로 걸어간다. 뒷문을 나가기 직전.
“마왕각주, 따라오도록.” 윙이 눈을 빛내며 나와 같이 일어나기에 고개를 저었다.


“왜.”
“스크롤을 구해오면 구경시켜 줄 터이니, 지금은 여기 있어다오.” “진짜지? 믿는다. 싸우게 되면 나 부르고!” 윙의 말을 들으며 바텐더가 열어둔 뒷문으로 들어가니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주방이 나왔다. 귀퉁이에 식자재 창고처럼 보이는 보관고에 열쇠를 꽂아 돌리는 그. 창고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대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심계.

후읍. 양껏 들이마셔 육체를 심계에 적응시킨 후, 안쪽으로 사라진 바텐더를 따랐다.
-폐하, 기습의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동의해요. 제가 도울게요. 헤일로.
부탁해요. 라임. 통곡의 벽 외에도 각종 방어와 이동 마법를 염두에 두고 검은 안개에 뒤덮인 문 앞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고막을 강타하는 폭발음. 내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통곡의 벽이 전신을 휘감는다. 일전, 모스에게 당한 약점을 보완하고자 전신에 피부처럼 들러붙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라임의 기민한 대처가 무안하게도.
“축하하네!” 세이프게임
“마왕각주 헤일로! 나 제제타를 잊지 말아 주시오!” “저놈은 잊어도 되오. 허나, 이 토복의 푸욜트만큼은-” 퍼퍼펑, 펑.
폭발음은 폭죽 소리였다. 머리에 내려앉는 금, 은, 흑색의 천들. 이 세 가지 색은 심계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힘을 상징한다.
“저 봐. 여차하면 한판 벌일 기세잖나. 미리 귀띔해주자니까는.” “어허, 놀란 표정을 카메라에 담자고 한 게 당신이잖소. 우외각주!” “처음에 잠깐 나온 이야기였잖나. 여튼 파티 주인공이 왔으니 그만하자고.” 마나를 교란하던 검은 안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보석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다수의 심계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눈에 익은 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는데, 공통점이 심계중앙회 소속이라는 것.
“그러니까, 사냥꾼들 보내서 긴장감 끌어올리자고 한 게 누구였지?” “나는 설각주가 낸 아이디어라고 들었소만.” “메리에게 주점으로 헤일로를 유도해달라 부탁한 건?” “그것도 설각.” “나 찾아?”
“허억.”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로 얼음 결정을 확대해놓은 듯한 게이트가 확 열리더니 설각주가 얼굴을 들이밀며 나타난다. 은색 포도주잔을 든 두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고 그런 그들의 뒷목을 노려보던 설각주가 내게 다가온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하이힐의 뒷굽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그 자리에 새하얀 서리가 물방울 형태로 맺힌다.
“잘 왔어!”
설각주가 무어라 하려 입을 열려는 때에 그 앞을 가리며 등장한 우외각주. 자기 상체만 한 맥주잔을 들고는 벌컥벌컥 마신다.
“크흐, 역시 베일 어르신이 담은 맥주는 죽이는구먼. 그나저나 마왕각주. 데카 페이지를 찾는다지?” 씨익 웃으며 그리 말하는 우외각주의 모습에 벌써 소문이 돌았구나 싶어 긍정했다.

“마지막 한탕 해야지.” “으하하, 시원하니 좋구먼! 플레이어라면 그래야지. 으억!” 우외각주의 무릎이 접히고 무릎이 땅에 닿기 직전에 멈춘다. 커다란 덩치의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새하얀 여인.
“잘 지냈니?”
장난기를 얼굴에 머금은 설각주. 오랜만에 보는 척하지만, 그녀는 엘포튼 죽순이다. 올 때마다 비의 악사를 불러달라 요구하는 통에 자주 만났었다.
우리 섬의 VIP는 우대해줘야지.
“덕분에요.”
여러 가지 의미로요. 대단한 이중 트랩이었습니다.
메리의 묘맥은 어디까지인지. 왜 웃나 했네.
“후후, 조심해. 요즘 데카 스크롤 찾는다고 소문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 “관리국 말이군요.” “최근 사후세계에 불만을 품은 간부들이 급격히 늘었다는 말도 들리고…. 굳이 다 아는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너, 괜히 여기 있다가 다른 각주들에게 붙들릴 테니까. 베일 회장에게 가보렴.” 회장? 베일이 회장이었나. 오픈홀덤
설각주는 파티장의 안쪽으로 난 통로를 가리키며 내 등을 가볍게 민다.
“잘 다녀와. 보기보다 착한 사람이니 긴장하지 말고.” 통로 안쪽에 발을 들이니 먼저 와 있던 몇 사람이 내 눈치를 보다 먼저 들어가라며 자리를 양보한다. 묵례로 답하고 안으로 발을 옮기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비서로 보이는 일각 악마가 양해를 구한다. 그러겠다고 하자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문 안으로 들어가 무어라 입을 벙긋거린다. 소리가 차단되는 모양.
“들어가시지요.” 얇은 막을 통과하자 물에 잠긴 듯한 감각이 전신을 훑는다. 몸이 무거워지는 건 둘째치고 굉장한 탈력감이 느껴져 심속화를 사용. 거머리처럼 들러붙던 불쾌한 감각이 사라진다.
“그것이 너의 근원인가. 불의 향을 내는 혼을 가졌으면서 심계의 힘을 그리 능숙하게 사용한다라…, 바트 록터가 괜히 자네를 아끼는 게 아니었어.” “베일 메도우. 맞습니까?” “가명이네만. 이 몸은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네.” “부업으로 분위기 좋은 술집도 운영하시고요.” 그의 입가가 올라간다.
“그렇다네. 거기 앉게.” 내부 광경은 모던한 분위기의 사무실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좌우의 책장엔 책 대신 지구본 같은 구체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뭐지?

묘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폐하. 팰리스와 연동하여 저 물체를 관찰해본 결과.
역시 우리 케프, 부지런해.
-행성을 비추는 설비입니다. 폐하께서 플레이한 핏빛 행성도 존재합니다. 우측 진열장 최하단을 봐주십시오.
케프의 말이 맞았다. 손바닥 크기의 투명한 관 속에 붉은 구슬이 들어 있었고 팰리스가 확대하니 적색은 붉은꽃에서 비롯되었다.
“눈치도 빠르고. 인재는 인재야. 보다시피 이곳의 행성들은 전부 관리국의 손을 거친 녀석들이라네.” “…….”
“더 궁금한가?” “스크롤에 관한 대화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안달하지 말게. 517년이나 봉인된 스크롤이 인제 와서 누가 낚아채기라도 할까. 그거 아는가, 저 행성들. 과거에 신성이었다네. 지금은 죽거나 잠들었고. 핏빛 행성은 그래도 자의적으로 소멸했네만, 대부분은 타의에 의해서 그리되었지.” “그-”
“자네의 짐작이 맞네. 우주관리국의 작품이지. 좌측 서재는 아직 플레이 되기 전. 우측은 플레이 된 후의 행성.” -폐하, 좌측 행성들은 일정 시간마다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죽기 직전의 환자를 모아놓은 병동.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우측은.
“무덤.”

“그렇지. 관리국은 어린 신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외부의 관심을 끊은 후 스크롤의 소재로 사용한다네. 우리가 왜 자네를 초대했는지 짐작이 가는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입을 다물고 참담한 얼굴로 별의 무덤을 훑고는.


“아는가. 자네의 라이벌인 모스는 신성이 되자마자 우주관리국에 고용되었다네. 거창한 청소부를 구했어.” 행성 포식자. 아더넷에서 모스는 그렇게 불린다. 균열을 마구잡이로 찢어댈 수 있었던 이유.
성력을 어디서 모았나 했더니, 관리국의 지원이었나. “제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그가 아무것도 허공을 쥐고 당기자 드륵, 서랍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돌돌 말린 스크롤이 그의 손 위로 굴러떨어진다. 로투스홀짝
“데카 스크롤이라네.” 목울대가 꿀렁이려는 것을 간신히 멈춰 세웠다.
“우리는 사후세계의 의지 덕에 존재한다네. 그가 지구라는 신성에서 거래를 따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도 굴레에서 혼이 세탁 당하고 있겠지.” 스크롤 끄트머리를 쥐고 나를 향해 슥 미는 베일. 최대한 느릿하게. 긴장하지 않은 척. 위장하며 손을 뻗었다.
홱, 다시 자기 쪽으로 스크롤을 끌어당기는 베일 메도우.
“데카 스크롤은 사후세계를 위해 플레이한다네. 어떤 플레이일지 짐작이 가는가?” “적어도, 우주관리국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겠군요.” “바로 맞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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