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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화 눈을 치켜뜬 것도 잠시.
“물론이다. 이안.” 메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안이 거절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 듯, 차라리 안도한 눈빛.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안이 중대하고 위험한 만큼, 적합한 대가를 약속하겠다. 원한다면 귀족 작위라도-.” “지금 중요한 건 조건이 아니오.” 이안이 말을 잘랐다.
“그전에 계약 내용부터 다시 고민하셔야 할 테니.” “내용을…? 어째서지?” 어리둥절한 눈빛.
이런 부분은 바로 못 알아듣는군.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말했다. EOS파워볼
“배덕자들을 찾아내 처단하는 게 경의 다음 목적이라면, 계속 동행하는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오.” 그제야 메브가 멈칫했다.
“…그리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일단은 경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지. 본인도 잘 아시지 않소?”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는 아겔 란에서 아주 드문 존재였다.
그런 만큼 어디서든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에 들어올 때 그랬듯이.

“배덕자들의 눈을 피할 수 없으리란 거군.” 메브가 비로소 읊조렸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덧붙였다.


“경이 바로 왕성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도 있소. 시간을 허비하는 건 둘째 치고, 성에 발을 들이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오. 나는 흑마법사의 존재를 증명할 증인이고, 왕께선 전쟁을 준비하시니.”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전쟁을-.” “흑마법사가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관련된 배덕자들이 있다 한들, 왕께서 전쟁을 포기하실 것 같소?” 메브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국왕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내가 새로 의뢰를 받는다면, 역할을 나눠야 할 것이오. 경은 안에서, 나는 밖에서.” 메브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안이 느긋하게 말을 맺었다.
“그럼 각자가 더 많은 배덕자를 찾아낼 수 있겠지.” 이유는 그럴듯하게 붙였지만.
결국은 혼자 다니겠단 얘기였다.
어차피 그가 해결해야 할 퀘스트들은, 아겔 란의 타락자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들이 태반.
그러니까 본래 하려던 것들을 해나가기만 해도, 그녀의 의뢰와 연계 퀘스트까지 해결될 터였다.
메브가 타락자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게 되리란 건 덤이었다.
적어도 믿는 구석이 하나는 생길 테니까.
그런 이안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메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리 있는 말이군, 이안.”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세이프게임
“하지만 너도 말했듯, 흑마법사의 존재를 증명할 외부의 증인이 필요하단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거야 뭐, 이제 일행의 용병이 나만 있는 건 아니잖소?” “……! 그렇군. 미구엘이 있었어.” 메브가 눈을 치켜뜨며 탄식했다.
실제 성격이 어떻든, 미구엘 역시 겉보기로는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용병의 표본 같았으니까.
증인으로 딱 적당한 인물이었다.

미구엘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차차 고민해 보시오. 무엇이 최선일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이안이 느긋하게 덧붙였다.
메브가 제안을 받아들이리란 확신이 있기에 나온 여유였다.
지금까지 함께한바, 이런 부분에서 그녀는 이안의 상대가 안 됐다.
“알았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메브가, 문득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군. 나는 네가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는지부터 물을 줄 알았거늘.” 모든 일엔 순서라는 게 있거든.
속으로 읊조린 이안이 피식댔다.
“그래서 작위를 꺼내 드신 거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너라면 왕국에도 큰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애석하게도 그건 거절하겠소. 차라리 더 많은 돈이면 모를까.” “돈은 영지가 생긴다면 결국엔 손에 넣게 될 것들이다.” “대신 떠날 수가 없게 되잖소. 왕을 모셔야 하고.” “그편이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보다야 나을 텐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말이오.” 이안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는 이 세계의 결말을 봐야 했다.
그를 이곳에 부른 원흉이 누구인지도 알아내야 했다.
그게 설사 신일지라도, 자신에게 왜 이런 짓거릴 했는지 대답을 엔트리파워볼 들을 생각이었으니까.
답을 들을 수 없다면 적어도 한 방은 먹여야 직성이 풀리리라.
미친 복수귀가 될 수도 있는 성기사를 돕는 것도, 검은 벽의 광기나 어둠에 심취한 것들을 쳐 죽이는 퀘스트를 이어가는 것도, 결국은 그러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그래. 사연이 있겠지.” 메브가 이해한다는 듯 읊조렸다.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바위에 놓인 등잔을 집어 들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소? 아까부터 씻고 싶어서 말이오.”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메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뒤따라 바위에서 등을 뗀 메브가 문득 비틀댔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안의 곁에 따라붙었다.
이안이 입을 연 건 그 직후였다.

“그러고 보니, 경의 말씀이 사실이었소.” “…무엇이 말이냐?” “정말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더군.” “……!” ***
다음 날. 일행은 정오를 조금 넘어 마을을 떠났다.
새로 산 말의 안장 양쪽에는 식량을 비롯한 보급품 가방이 각자 두둑하게 매달려 있었다.
무덤 숲까지 더는 거쳐 갈 마을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올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 사이에 감도는 적막은, 그런 비장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메브는 이안이 던진 화두를 고심하느라 안면 가리개까지 내린 채 침묵했고.
“…….” “…….” 어젯밤 이후 눈도 마주치지 않는 필립과 미구엘은, 이안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상 모든 침묵의 중심에 이안이 있는 셈이었지만.
“흐음….” 늘 그렇듯, 정작 그는 그런 속사정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간만의 고요함에 만족하며, 손아귀의 감촉에 몰두했다.
이안이 슬쩍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흰색 구슬이 드러났다.
안에 가득 찬 마력이 안개처럼 진득하게 넘실댔다.
사원에서 정화한, 두 개의 마력의 정수 중 하나.
이건 마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가치를 가진 귀물이었다.
마석은 마력 배터리에 불과하지만.

정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마력 증폭기의 역할까지 겸했으니까.
중급 마법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이안도, 대마법사 뺨치는 화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소모품인 게 아쉽긴 하지만….’ 적어도 정수가 제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아겔 란에서 그의 적수를 찾아볼 수 없으리라.
다시 꾹 주먹을 움켜쥔 이안의 눈빛이 만족스럽게 일렁였다.
‘…이게 제대로 작용하는지 확인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그리고 늘 그랬듯,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일행은 미구엘이 말한 샛길로 완전히 접어들었다.
이름과 달리 온통 잿빛에 가까운, 붉은 계곡 외곽 지역.
아는 사람만 아는 길이라던 말답게 좁고 등락이 심한 길이었지만. 파워볼게임
정작 일행은 전혀 다른 부분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게 뭡니까? 아예 말을 탈 수도 없잖아요.” 말에서 내려 걸음을 옮기던 필립이 불쑥 내뱉었다.
풀과 나무가 점점 울창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멋대로 솟은 가지들이 기수의 경로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은 다들 말에서 내려, 고삐를 손에 쥔 채 일렬로 이동해야 했다.
미구엘의 바로 뒤였던 덕분에, 필립은 비로소 품고 있던 불만을 토로 하기 시작했다.
“두 나리께서 고생하시잖습니까. 이러다 말이 다리를 삐기라도 하면 상황이 아주 곤란해진단 말입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시벌, 이상하네. 전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미구엘이 목을 긁적이며 중얼댔다.
필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전이 언제인데요?” “글쎄. 한 삼, 사 년쯤 됐나…? 어쨌든 오 년까진 안 됐소. 내가 이 길로 내려가서 발크시로 갔던 거니까.” “뭐라고요? 그렇게 오래전에 갔던 길을 호언장담하면서 온 겁니까?” “실제로도 길이 있긴 있잖소.” 저것들 또 시작이네.
맨 뒤에서 걷던 이안이 혀를 찼다.

하지만 굳이 저들의 입을 다물게 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유의미한 정보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기분 나쁘단 말이지.’ 주위 풍경이 영 불길했으니까.
그 크기가 무색하게, 푸석하고 생기 없어 보이는 풀과 나무들.
동시에 어딘가 낯이 익기도 했다.
“길 똑바로 트십쇼. 댁이 실수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 와중에도 필립의 핀잔은 멈추지 않았다. 어젯밤, 미구엘에게 덤터기를 썼던 복수를 하리라 다짐한 것처럼.
“거, 그만 좀 뭐라고 하쇼. 최선을 다하고 있잖소. 애초에 출발하기 전에 위험한 길이라고도 했었는데. 조금 더 험해진 게 뭐 대수라고.” “이젠 위험한 데다 험하기까지 하니까요.” “대신 전보다 위험하진 않은 것 같다, 이거요. 전에 왔을 땐 여기 고블린이랑 그렘린이 득시글댔소. 그것들이 다 떠난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수풀이 우거질 리가 없단 말이오.” “고블린과 그렘린이라고?” 불쑥 끼어든 건 이안이었다.
“그, 그렇소. 여기가 놈들의 소굴이었지.” 미구엘이 잽싸게 대답했다.
필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루 거리에 계곡 요새가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마물이 살았단 겁니까?” “국경 지대는 어떨지 몰라도, 여기선 병사들이 무작정 마물을 족치러 다니지 않소. 그러다 죽거나 다치면 누구 손해인데?” 코웃음 친 미구엘이 덧붙였다.
“영주님들이 신경 쓸 정도의 손해를 끼치거나, 선제공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엔 있든 없든 신경도 쓰지 않소. 그러니 나 같은 용병들이 먹고사는 거지.” “만약 이 사이에 놈들이 숨어 있다면, 여러모로 피곤해지겠군요. 그쪽 덕분에.” “그것들이 있으면 이런 수풀이 있을 수가 없다니까? 메뚜기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놈들이오. 의외로 풀도 좋아하지. 그래서 놈들이 살았던 숲에는 껍데기 없는 나무만 남는 거요. 뭘 알고 말해야지. 쯧.” “먹을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지.” 이안이 나지막이 말을 맺었다.
그는 어느새 미간을 좁힌 채로 주위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낯이 익다 싶더니, 이 길이 오염된 숲으로 이어져 있던 건가…?’ “먹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리?” 그의 말투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었는지, 필립이 물었다.
“말 그대로다. 너도 경험해 봤을 텐데. 죽은 채로 움직이는 것들.” “구울… 이요? 마물도 구울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보통은 없지만, 숲 자체가 오염된 마력에 침식된 상태라면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늪지대의 숲이 그렇듯이.” “그 저주받은 밀림에… 들어가 보셨다고요? 그냥 늪지대에만 계셨던 게 아니라요?” “그래.” 아주 주옥같은 곳이었지.
이안은 뒷말을 삼켰다.
늪지 드레이크와 싸울 자신이 없던 때의 이야기였다.
그는 대신 밀림에 발을 들였고, 무작정 나아갔었다.
구울이 되어 살아난 온갖 동물, 살아 움직이는 나무와 미친 요정들까지 상대하면서.
그다지 강하진 않았지만, 놈들도 숲도 끝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안은 결국 며칠 만에 도망쳐 나왔고, 다시는 늪지대 주위의 어떤 밀림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물론 이곳은 그 밀림과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게임에서 경험해 본 바로는, 검은 벽의 광기가 원인이었기 때문 파워볼사이트 이다.
어떻게 이런 변방의 숲에 광기가 스며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게임에서 그가 퀘스트를 받았을 때는, 영주군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오염이 진행된 상태였었다.
그리고 그가 볼 때 여긴 그 오염의 시발점에 아주 가까워 보였다.
“밤이 되기 전까지 여길 통과하는 건 무리겠지?” 이안의 물음에 미구엘이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 후면 해가 질 텐데. 그 사이엔 턱도 없소.” “…그럼 싸울 준비를 해야겠군.” “무덤 숲 말고도 저주받은 숲이 또 있다고요? 그것도 요새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이 숲이요?” 필립이 기가 막힌 듯 되물었다.
이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염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여긴 인적도 거의 없는 숲이고. 소문이 퍼지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식인 식물이 사람을 최소한 수십 명은 잡아먹은 후에 말이지.
그러고 보니 공교로운 일이었다.

오염된 숲이, 무덤 숲으로 가는 샛길과 이어져 있었다니.
게임이었을 때는 그 연관성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현실이 되고 보니 의미심장했다.
‘무덤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으려는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이 길을 몰랐던 건가.’ 그리 생각한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조심해라. 식물들도 변이되었을 거다.” “…풀과 나무까지 마물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런 건 한눈에 구별할 수 있으니까,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 검은 벽의 광기에 물든 식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이해 마물이 되었다.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육식 나무는 일종의 부비 트랩이었다.
눈에 띄는 열매나 잎사귀를 지녔고, 뭔가가 건드리면 조건반사적으로 공격했다.
덕분에 육식 나무들로 뒤덮여 갈 수 없게 된 지역도 꽤 많았다.
이안이 저주의 근원을 처리한 후에도, 그것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정말 이 근처에서 오염이 시작된 거라면….’ 그때보다 이른 시점이라 하더라도, 언제든 마주칠 수 있으리라.
“그게 혹시… 저런 걸 말씀하시는 거요?” 미구엘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은 건 그때였다.
멈춰선 일행이 차례로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미구엘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울창한 나무 한 그루가 길옆에 불쑥 솟아 있었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도 얇지만 위로 높게 자라서, 근처의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그중에서도 한 그루만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였다.
와서 한입 맛보라는 듯이.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덧붙였다. 로투스바카라
“저 나무 바로 앞으로는 지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미구엘의 탄식이 이어졌다.
“시벌… 분명히 처음 보는 나무요. 몇 년 만에 저렇게까지 자라는 나무가 정상일 리가 없지.” “그 비정상인 숲으로 우릴 이끈 게 당신입니다, 미구엘.” 필립의 일침에, 미구엘이 머쓱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사이에 이 사단이 일어났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 “더 떠들면 저게 어떤 마물인지 몸소 체험하게 해 주지.” 이안이 내뱉고서야 미구엘과 필립이 입을 다물었다.
이어진 잠깐의 침묵.
짧게 헛웃음 지은 이안이 말했다.
“뭐 하냐? 출발해.” 창백한 안색이 된 미구엘이 마른 침을 삼키고는 내뱉었다.
“…까짓거, 그래. 시벌.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면야.” 그가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다리를 후들대고 꺼림칙한 표정으로 나무를 주시하면서도, 어쨌든 멈추지는 않았다.
숨소리도 내지 않는 필립과 태연한 걸음의 메브가 뒤를 따랐다.
둘 다 말고삐만큼은 콱 움켜쥔 채였다.

‘아직 덜 자란 놈이군. 다 자라면 내가 아는 모습이 되는 거였나.’ 차분하게 관찰하며, 이안이 마지막으로 육식 나무 앞을 지나쳤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길쭉한 나무들도 저것과 같은 종류였다.
다만 아직 열매도 맺지 못했을 만큼 덜 자랐을 뿐.
다른 육식 나무들도 이 정도라면 아직은 이 길을 통과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건드리지 않게 조심만 하면….” 따라오지 않으려는 말의 고삐를 끌어당기며, 그가 결론을 읊조린 순간이었다.
푸스슥-!
방금 지나친 나무의 이파리들이 별안간 일제히 떨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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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새카만 무언가가 이안의 등 뒤로 채찍처럼 떨어졌다.
“……!” 고개를 돌린 이안의 눈에 들어온 건, 잿빛 껍질이 돋은 파리지옥 같은 아가리가 말의 머리통을 콱 움켜쥔 모습이었다.
말이 파리지옥이지, 그 아가리에는 잿빛 껍질이 톱날처럼 돋아 있었다.
이안의 기억보단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머리통이 씹힌 말은 단말마조차 흘리지 못했다.
콰직!
그대로 머리통을 으깨 버린 아가리는 내려온 순간만큼 빠르게 솟구쳐, 울창한 이파리 사이로 사라졌다.
푸화악-!
목 위가 사라진 이안의 말이 피를 뿜어내며 주저앉았다.
핏방울을 뒤집어쓴 이안의 눈에, 뒤늦게 불똥이 튀었다.
“이런…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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